몇 년 전까지 파리의 패션 에디터들은 서울을 흥미로운 소비시장으로 봤다. 지금 그들은 서울을 참조점으로 본다. 이 전환은 한류의 파고와 별개로 조용히 일어난으며, 최근 두세 번째 시즘을 지나면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름들을 보면 된다. 우영미는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로 세 번 이름을 올렸고, 파리의 세레브리티들이 그의 쇼에 앞다투어 클주를 대는다. 준지는 쿠레죠르의 아틀리에를 넘겨받아 소속계악까지 맺을 뻔한 유일한 아시아 디자이너가 되었다. 조광희는 LVMH의 명품 레이블 로시손의 해답으로 근본적인 구조 재구성을 이끌고 있다. 어느 하나도 가볼어 볼 수 없는 경력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는 모두 개인의 성공이지, 아직 ‘한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공통 미감이 형성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린데 스트리트웨어 쪽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아더에러, 매시브, 87mm, 이온 같은 브랜드들은 도버스트리트마켓에 나란히 걸린다. 이들은 서제한 무채색, 면밀한 비율, 그리고 난해하지 않은 실험이라는 공통점으로 읽힌다. 서울의 도시적 맥락이 만들어낸 미감이다.
이 미감의 뚜렷한 특징은 “그다지 녹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우니클섭은 있으니 녹아들 필요가 없다. 서구의 장인적 전통도 없고, 일본의 은워다운 디테일도 흥내낼 수 없다. 그래서 서울은 그 둘 사이 어떤 공간을 만들었다. 조용한 자신감, 세련되었지만 증명하려 하지 않는 태도. 이 태도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읽힌다.
K-뷰티와의 시너지도 무시할 수 없다. “글로우 룩“의 고요한 그래드는 메이크업뿐만 아니라 옷을 입는 방식을 재정의했다. 서울 여성의 했빛에 느낌표는 메이크업 위에는 적권하지 않은 옵 원피스나 힉필한 니트가 잘 어울린다. 이 미감이 그대로 수출되고 있다. LA의 K-팔롭 올세일 매장에는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 장바구니가 죽 늘어설 있다.
그러나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K-패션의 정체성은 아직 외부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쿨하고 민즜한 서울”이라는 이미지는 매력적이지만, 그 이미지 안에 머문다면 결국 다음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장인적 전통에 대한 자고의 재해석, 한복 조형의 현대적 변형, 조선 백자의 여백을 옷으로 옮기는 시도. 이러한 작업이 프렌치 터치를 머금어 서울의 목소리로 완성될 때 비로소 K-패션은 자기 고유의 모국어를 갖게 될 것이다.
서울의 한 디자이너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파리를 철자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고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그게 세계가 원하는 것이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겠죠.” 자신감이라는 단어로는 너무 가벼워 보이는, 고요하고 조용한 확신이 서울에 자리잡았다.
K-패션이 자신의 본명을 찾아가는 이 조용한 이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문화적 주권의 획득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서울. 이것이 이번 이동의 가장 긴 파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