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패션위크는 언제나 시즌의 가장 어린 도시였다. 패션 인재들이 처음 자신을 세상에 소개하는 곳,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가장 미숙한 도시. 그러나 최근 몇 시즌 동안 그 어린 도시가 가장 진지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졸업 후 자신만의 레이블을 시작한 디자이너들이 5년, 10년 단위의 작업을 펼치며 런던의 패션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다.
이번 시즌 가장 주목받은 디자이너는 디 모니어와 사이먼 로사를 비롯한 30대 초중반의 디자이너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교육받았고, 큰 하우스에서 짧게 일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의 컬렉션은 학생 시절의 야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산업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이 균형이 런던 패션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JW 앤더슨은 런던의 입장에서 보면 흥미로운 이정표다.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한동안 자신의 레이블을 줄였지만,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 시즌 그의 쇼는 그의 두 정체성, 즉 럭셔리 하우스의 디렉터와 인디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서 양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다음 세대 런던 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심플론, 코너 아이브스, 디션 같은 새로운 이름들은 런던이 가진 또 다른 자원, 즉 거리 문화와 예술 학교 문화의 교차점을 활용한다. 이들은 잡지, 음악, 미술과 패션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컬렉션은 하나의 큐레이션 작업이고, 그래서 런웨이는 갤러리 오프닝과 비슷한 분위기를 띤다. 이런 접근이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신선하게 읽힌다.
구조적 변화도 있다. 영국 패션협회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신생 디자이너들에게 쇼 비용과 마케팅을 직접 지원하는 제도를 강화했다.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자체 예산이 부족해 쇼를 포기해야 했던 디자이너들이 다시 캘린더에 등장했다. 산업 인프라가 어떻게 한 도시의 패션 풍경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런던 진출도 활발해졌다. 우영미는 이번 시즌도 런던 패션위크 캘린더에 이름을 올렸으며, 신생 한국 레이블 ‘KEMI’가 런던에서 첫 쇼를 가졌다. 런던은 한국 디자이너에게 파리만큼 진지하지만 더 실험적인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이름을 알리고 평론을 받기에 적합한 도시라는 것이다.
런던에 대한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브렉시트 이후의 인프라 문제다. EU 디자이너들이 영국에서 일하기 어려워지면서, 한때 활기를 띠던 다문화적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이 우려를 일부 잠재웠다. 런던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모인 디자이너들의 도시이며, 그 정체성이 행정적 장벽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한 패션 평론가가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며 말했다. “런던은 다른 패션위크가 가지지 못한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문화다.” 그 위험이 때로 실패로 이어지지만, 그 실패의 가능성이 바로 새로움을 만든다. 다른 모든 도시가 안정을 추구할 때, 런던은 여전히 불안정을 선택한다. 그것이 이 도시를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깊이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