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뎀 모랄리오울루의 아틀리에는 런던 이스트엔드의 낡은 창고 건물 3층에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오르면 문이 열리기 전부터 천 냄새와 인쇄 잉크 냄새가 섞인 공기가 먼저 맞이한다. 그 공기 속에서 그는 매 시즌 새로운 이야기를 짓는다.
“저는 항상 인물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차를 내오며 말했다. “실존했던 여성, 혹은 소설 속 여성. 그 여성이 어떤 방에서 어떤 빛 아래 서 있는지를 상상하는 것에서 컬렉션이 시작돼요.” 올 시즌의 뮤즈는 로마의 작가 엘사 모란테였다. 1950년대 로마의 지식인 살롱을 드나들었던 그녀의 이미지가 컬렉션 전체를 관통했다.
에르뎀의 드레스는 처음에는 아름답고, 오래 볼수록 복잡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프린트 안에 텍스트가, 자수 안에 지도가, 레이스 패턴 안에 건축 도면이 숨어 있다. 보는 이가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옷이 된다.
그는 캐나다 터키 이민 가정 출신으로, 몬트리올에서 자라 런던으로 건너왔다. 그 이중 정체성이 그의 작업을 규정한다. 완전히 영국적이지도, 완전히 동양적이지도 않은 미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곳에 속해 있는 옷들.
비즈니스 측면에서 에르뎀은 럭셔리 스펙트럼의 틈새를 정확히 공략하고 있다. 빅 하우스의 규모는 아니지만, 인디 브랜드의 불안정함도 없다. 바니스, 버그도프, 해롯을 포함한 전 세계 80개 이상의 고급 편집숍이 그의 컬렉션을 구비하고 있다.
“절대로 빠르게 가고 싶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매 시즌 컬렉션을 만들 때마다 지난 시즌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전부입니다.” 이 말이 진심이라는 걸, 그의 컬렉션 연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에르뎀의 드레스를 입는 사람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게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가 런던의 낡은 창고에서 밤새 읽은 책들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의 옷은 항상 문학의 냄새가 난다.
차 한 잔이 식어갈 무렵, 그는 다음 시즌 리서치 자료를 꺼냈다. 흑백 사진들, 필기 노트, 그리고 누렇게 바랜 편지들. “다음엔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말만으로도, 다음 시즌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