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위크 스케줄에 이름이 없었다. 초대장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런던 패션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중 하나는 그라함 서덜랜드였다. 쇼를 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쇼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역설. 그것이 그의 방식이다.
서덜랜드는 2019년 런던 남부 브릭스턴의 작은 작업실에서 브랜드를 시작했다. 자본도, 인맥도, 홍보 예산도 없었다. 그에게 있던 것은 세인트 마틴스에서 갈고닦은 패턴 기술과, 패션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었다.
“저는 패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믿지 않아요.”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6개월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이 그것을 쫓게 만드는 시스템. 저는 그 반대편에 서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시즌을 없앴다. 작품이 완성되면 판다.
그의 작업실에는 재봉틀이 세 대뿐이다. 조수가 둘이다. 연간 생산량은 100피스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대기 리스트는 18개월이다. 구매자들의 면면은 놀랍다. 뉴욕의 갤러리스트, 도쿄의 건축가, 서울의 큐레이터. 패션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문화적 오브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서덜랜드 가먼트의 특징은 시간이다. 하나의 재킷을 만드는 데 평균 40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단추 하나를 고르는 데도 수 주일을 쓴다. “소재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야 해요.” 그의 말이다. “서두르면 소재가 저항합니다.”
그의 가격은 비싸다. 재킷 하나에 3,500파운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구매자들은 가격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 가격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100시간의 손 작업과 최상급 울 소재, 그리고 평생 입을 수 있는 내구성. 계산해보면 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패션 저널리스트 사라 무어는 서덜랜드를 두고 “포스트-패션 시대의 첫 번째 디자이너”라고 불렀다. 트렌드가 아닌 가치를, 시즌이 아닌 시간을 파는 사람. 그 정의가 정확하다면, 포스트-패션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새로 완성한 코트를 보여줬다. 스코틀랜드 해리스 트위드와 일본 셀비지 덴임이 접합된 소재. 어느 쪽도 희생하지 않은, 두 소재의 공존.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코트가 그 말을 대신 했다.